농촌진흥청(청장 권재한)은 우리 고유의 재래 가축인 ‘제주 흑우’ 암소 30여 마리를 한라산 중산간 지역의 자연 초지에서 오는 9월까지 약 4개월간 방목한다고 17일 밝혔다. 방목지는 해발 500~800미터에 위치한 55헥타르 규모의 초지로, 제주의 청정 환경 속에서 흑우가 자유롭게 활동하며 건강을 증진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 제주 흑우가 자연초지에서 4개월 간 방목된다.
‘제주 흑우’는 털이 검은 한우 품종으로, 기원전부터 제주도 전역에서 사육되어 온 유서 깊은 재래 품종이다. ‘조선왕조실록’과 ‘탐라순력도’, ‘탐라기년’ 등 역사 문헌에는 제주 흑우가 제향에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제주 흑우가 단순한 경제 가축을 넘어 문화적·의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 사육되는 일반 한우나 칡소, 교잡우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유전적 계통을 갖고 있어, 유전자 다양성 보존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축자원으로 평가된다.
농촌진흥청은 이번 방목을 통해 제주 흑우의 생리적 활력 향상과 질병 저항력 강화, 전반적인 생산성 증진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기존 방목 관련 연구에 따르면, 방목 사육 시 소의 활동량이 증가해 에너지 소비는 축사 사육 대비 15~50%까지 높아지는 반면, 근골격계 건강은 향상되고 전반적인 체력과 면역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또한 방목 환경에서는 채식 시간이 하루 6시간 이상 더 길어져, 소 한 마리가 하루 평균 60∼70kg의 신선한 풀을 섭취하게 된다. 이 생초는 수분 함량이 약 70∼80%에 달하며, 전해질 균형 유지와 체온 조절, 영양소 운반 등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생초에 함유된 탄수화물(50∼70%)과 단백질(10∼25%),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은 별도의 배합사료 없이도 소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자원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생초에 풍부한 섬유소가 반추위 내 미생물 발효를 촉진해 주요 에너지원인 휘발성 지방산(VFA)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60~80%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타액 분비를 증가시켜 반추 작용을 원활하게 하고, 장의 연동운동을 개선하는 효과도 나타난다.
방목 사육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다. 연구에 따르면, 방목 사육된 소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밀집 사육 대비 10~30% 낮게 유지되었고, 이는 동물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더불어, 방목 사육은 반추위 산증, 설사 등의 소화기계 질환 발생률을 크게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배합사료 중심의 밀집 사육 방식에서는 반추위 산증 발생률이 20∼40%, 설사 발생률이 20∼30%에 달하지만, 방목 사육 환경에서는 각각 5% 미만, 5~10% 수준으로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남영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센터장은 “제주 흑우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 생명자원을 모두 아우르는 귀중한 가축 유산”이라며 “지속적인 유전 보존 연구와 개체 증식을 통해 제주 흑우의 산업적 활용도와 인지도를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도 자연 순환형 축산 시스템을 강화하고, 지역 특산 가축의 유전 자원 보존과 지속가능한 축산 모델 확산을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