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계 수 급감·질병 확산·제도 변화…농가 현장은 삼중고에 시달린다
2025년 상반기, 계란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며 소비자 체감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에선 ‘생산자 담합’이나 ‘시장조작’ 등을 언급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복합적 구조 문제와 정책 전환기의 혼선으로 인해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계란을 생산하는 산란계 수가 줄어 계란 공급이 원할하지 못하다.
2025년 5월 기준, 국내 계란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산란계는 약 6,197만 마리로 집계된다. 이는 올해 1월 대비 3.2% 감소, 지난 4월과 비교해도 미미한 회복
세(0.4%)에 그친다. 2024년 말 6,400만 마리를 웃돌던 산란계 수가 가파르게 줄어든 것이다.
한편, 최근 5개월간 병아리 입식량은 월평균 448만 마리로, 기존 평균 437만 마리에 비해 다소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생산 확대로 해석되기 어렵다. 성계(成鷄)가 아닌 병아리 중심의 사육 전환은 즉각적인 산란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공백을 의미한다. 실제로 전체 사육 규모 약 8천만 수 중 산란 가능한 닭의 비중은 줄고 있는 실정이다.
잇단 가금류 질병 발생…산란율 10~40%까지 감소
현장에서는 닭 전염성 기관지염(IB),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뉴모 등 다양한 질병이 산란율 저하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IB는 산란율을 3~5%
저병원성 AI는 최대 40%까지
뉴모는 3% 이하의 하락을 유발한다.
특히 친환경·무항생제 사육 비율이 높은 국내 생산 환경에서는 회복 기간이 길고 폐사율도 높아, 질병 발생의 여파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는 생산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급 기반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병아리 품귀 현상과 사육 면적 규제 강화…‘노계 생산’이라는 선택지
2025년 9월부터 시행될 산란계 사육면적 기준 확대(0.05㎡→0.075㎡)는 기존 농가에 큰 제도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농가가 제도 시행 전 병아리를 입식하려 하지만, 병아리 품귀 현상으로 계획 입식이 지연되거나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농가는 도태 시기가 지난 노계(老鷄)의 생산 연장이라는 임시방편을 선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란계는 80~90주령에 도태되지만, 현재 일부 농가는 120주령 이상까지 산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생산성 하락을 감수하면서라도 공급을 이어가야 한다는 고육지책이다.
노계의 평균 산란율은 일반 산란계보다 10~30% 낮으며, 일부는 산란율이 55%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도태가 불가능한 현실에 놓여 있다.
생산 상황은 유통 지표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계란 선별포장센터(GP)의 선별포장란 출하량이 감소하고 있는 점은 생산량 감소의 중요한 방증이다. 이는 농장에서의 생산 차질이 유통시장에까지 파급되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다.
소비는 증가…‘가격 경쟁력’과 ‘건강식 선호’가 한몫
한편, 계란 소비는 역설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른 축산물에 비해 가격 상승 폭이 작았던 계란은 고급 단백질원으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했으며, 최근 건강 식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1인당 계란 소비량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0.88개/일
2024년: 0.95개/일로 상승
수요는 늘고 생산은 줄며, 자연히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정부 개입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가격
일부에서는 계란 가격 상승이 생산자단체의 개입이나 담합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나, 생산자단체가 가격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기간에도 계란 가격은 상승했다. 이는 가격이 정부 통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급 불균형에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SPC 계열 제과업체는 계란 수급 확보를 위해 자율적으로 계란 구매단가를 195원까지 인상하기도 했다. 이는 가격이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의 사례에서도 계란 가격이 한때 개당 1,700원까지 치솟았다가 400원대까지 하락한 바 있는데, 이는 생산량 증대 때문이 아니라 가격 급등에 따른 소비 감소의 결과였다.
▲ 계란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가격 정보 제공은 시장 안정 위한 최소한의 장치
계란은 365일 생산되며, 물리적 특성상 운송 중 파손 위험이 높아 도매시장을 통한 가격 형성이 어려운 품목이다. 이에 따라 일본·유럽·미국 등 선진국들은 정부나 전문기관이 가격 정보를 제공하고 수급 균형을 유도하고 있다.
일본은 생산자단체의 가격 정보를 정책자금의 지원단가로 채택
미국은 연구기관이 생산원가+적정이윤을 기준으로 가격을 산정
국내에서도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가격 정보 제공 시스템과 정책자금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결론
계란 가격 상승은 단순한 수급 불균형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산란계의 감소, 병아리 수급 지연, 질병 확산, 제도 전환기 충격
노계 운용이라는 불가피한 선택, 선별포장량 감소, 소비 증가
이 모든 요인이 중첩되며 생산 기반의 근본적 구조 변화가 시장 가격에 투영되고 있다.
계란 가격 문제는 단편적 개입이나 일시적 조정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생산자에 대한 이해와 지원, 객관적 수급 정보 제공, 합리적 제도 설계를 통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