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실에서 3월 18일 계란 생산과 관련된 “민생현안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농해수위원장 어기구 의원(당진시)과 윤종군 의원(안성시)이 공동 주최했다.
▲ 민생현안 간담회가 국회 농해수위원장실에서 개최됐다.
계란 생산 농가들로 구성된 (사)대한산란계협회 안두영 회장과 협회 임원, 생산 농가들이 참석해 계란 수급과 가격, 관련 규제 등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대한산란계협회 안두영 회장은 계란 생산과 관련된 두 가지 주요 현안을 건의했다.
첫 번째로, 산란계 사육 기준 면적의 소급 적용 철회를 요구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사육 기준 강화 정책은 사육 마릿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잡아, 결과적으로 계란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규제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국내 계란 생산 농가는 경영 부담이 커지고 소비자들도 계란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이 같은 규제의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 10개 주에서 기존의 케이지 사육을 금지하고, 평사 및 방목 사육 방식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사육 가능한 마릿수가 줄어들어 계란 생산량이 급감했다. 사육 방식 변화로 닭들이 야외에서 철새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고병원성 AI 발생이 증가하면서 살처분 규모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미국 내 계란 공급이 줄어들면서 2024년 2월 기준, 계란 가격이 개당 최고 1,017원까지 폭등했다. 이는 기존보다 몇 배나 높은 가격으로, 사육 규제와 질병 확산이 맞물려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이 동시에 일어난 결과였다.
두 번째로, 고병원성 AI 확산과 살처분 증가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미국에서는 사육 규제 시행 이후 AI 발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24년에는 전체 산란계 3억 8천만 마리 중 4천만 마리(11%)가 살처분됐고, 2025년에도 이미 2,600만 마리(6.8%)가 폐기되는 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처럼 AI 확산과 살처분 증가로 인해 계란 공급이 더욱 줄어들고, 추가적인 가격 상승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만든다. 국내에서도 동일한 규제가 적용될 경우, 계란 생산량 감소와 가격 급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산란계협회는 사육 기준 면적의 소급 적용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부가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규제는 농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까지 증가시키는 만큼,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합리적인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번 간담회의 핵심 논의 사항으로 제시됐다.
오는 9월 1일부터 우리나라는 산란계의 마리당 케이지 규격을 기존 0.05㎡에서 0.075㎡로 확대하는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 조치가 적용되면 산란계의 사육 마릿수가 약 30% 감소하고, 이에 따라 하루 계란 생산량도 기존 5천만 개에서 3,500만 개로 줄어들어, 1일 약 1,500만 개의 계란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안두영 회장은 산란계에 산적한 현안 해결을 위해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계란을 100% 자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공급 감소는 국내 계란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사육 규제가 계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은 2년에 걸쳐 산란계 사육 마릿수가 약 18% 감소하면서 ‘에그 플레이션(Egg-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계란 가격이 폭등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큰 폭의 사육수 감소(30%)가 예상되며, 여기에 고병원성 AI까지 발생한다면 미국보다 더 심각한 계란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계란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사육 면적이 확대되면 닭 진드기의 발생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살충제 사용이 감소해 계란의 안전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사육 면적 확대와 닭 진드기 발생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우리나라보다 마리당 사육 면적이 작은 일본(0.042㎡/마리)과 캐나다에서도 닭 진드기 발생률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닭 진드기 문제가 사육 면적보다 위생 관리 수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사육 면적을 늘린다고 해서 닭 진드기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둘째, 우리나라는 이미 2024년부터 PLS(농약안전관리시스템) 제도를 시행하면서 산란계 사육 과정에서 살충제와 항생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농약을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농장이 폐쇄될 정도로 강력한 처벌 규정이 적용된다. 현재 국내 산란계 농가는 무농약·무항생제 사육을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육 기준을 확대해 농약 사용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논리는 모순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2023년 농촌경제연구원이 농식품부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육 기준 확대 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계란 가격이 최고 57%까지 상승하고, 관련 산업에 약 2조 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고려한 농식품부는 지난해 11월, 현재 사육 중인 산란계에 대해 2년간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미루는 대책에 불과하다.
결국, 규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계란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사육 기준 확대 정책은 계란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고, 오히려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위험 증가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간담회에서 안두영 회장은 산란계 비과세 기준을 기존 1만 5천 마리에서 5만 마리로 상향 조정도 요청했다. 안두영 회장은 현재의 비과세 기준이 2008년 이후 17년 동안 변경되지 않았으며, 현실적인 농가의 수익 구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1만 5천 마리 기준이 수익이 발생하는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조세 부과 기준으로서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4만 마리 미만을 사육하는 농가의 연평균 수익률은 -0.7%이며, 2만 마리 미만의 농가는 17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이 -12.7%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계란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비과세 기준을 5만 마리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산란계협회의 입장이다. 이는 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계란 공급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간담회에서는 산란계 사육시설 기준 변경의 소급 적용 문제도 논의됐다. 어기구 농해수위원장은 기존 규정에 맞춰 시설을 설치한 농가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어 위원장은 “시설 내구연한이 30년인데, 수십억 원을 투자해 설치한 시설을 정부의 새로운 규정에 따라 7년 만에 교체해야 한다면 이는 부당한 조치”라며,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윤종군 의원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생산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농가의 경영난이 심화될 경우 소비자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계란은 국민 식생활에서 중요한 필수 식품인 만큼, 안정적인 생산이 보장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의 사항을 꼼꼼히 검토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산란계 농가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비과세 기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사육시설 규정 변경에 따른 소급 적용 문제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농가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규제는 생산 감소와 계란 가격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보다 신중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돼야 한다는 게 대한산란계협회의 입장이다.